이 ‘여래좌상’은 절제된 소박함과 사유의 내면세계를 무척이나 우아하게 그리고 있으며 부처의 얼굴을 표현한 가장 아름다운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고려(918 1392) 초의 미학을 보여준다. 통일신라(668 918)를 지배하던 강직과 엄숙이라는 아이콘에서 벗어나 제조기법이 훨씬 부드럽고 유연해졌음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의 실재와 인간성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철에 금박을 입힌 불상의 모습과 실물을 모방하면서도 목재 특유의 다루기 쉬운 성질로 인하여 훨씬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며 옷주름의 처리도 유연하다. 상반신이 길고 허리가 가늘며 약간 굽은 어깨에 길쭉한 얼굴을 가진 온화하고도 맑은 느낌을 주는 얼굴은 도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소라 모양을 한 머리카락이 얹혀 있으며 이는 고려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중국 요나라(916 1125)의 불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한 여래좌상은 영원과 평화, 조화가 결합된 세계관을 구하는 매우 귀족적인 불교신앙을 강력히, 거의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다.
중국 당나라(619 907)의 몰락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918년에 통일신라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 고려가 등장한다. 북쪽의 국경에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 위협을 받아온 이 나라에서 불교는 백성들의 유일한 위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왕국 전체가 붓다의 보호를 받기에 이른다. 왕실의 지원을 받게 된 불교가 차츰 전국 방방곡곡에 스며들면서 높아가는 백성들의 신앙심을 표출하기 위한 매체로서 각종 상징물들이 왕국 내에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