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용 장식은 중국 회화의 단골 주제인데 한국에서도 문인들과 화공들의 작품에서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이런 형태의 용문양이 17세기에 자주 사용된 데에는 한반도에 특수한 회화 사정이 있었음을 알려주며, 이는 아마도 당시에 도자기의 수요가 점차 다변화되던 추세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도공들이 문인화에서 영감을 받게 되면서 자연주의풍의 이 양식이 철저하게 형식을 추구했던 화풍과 결합함에 따라 선과 공간을 처리하는데 있어 놀라운 솜씨를 보이고 있다.
17세기의 한국 도공들이 거의 직관에 의존하여 자연스러우면서 시원시원하게 용을 처리한 이 그래픽 기법은 송나라(960 1279) 시대의 중국 화가들이 추구했던 보다 힘찬 기법과는 다르다. 따라서 여기에 취급된 주제는 유연하고도 역동적인 형태와 묵이 함께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함, 심하게는 일종의 몽환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작품은 또한 초기 분청사기의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이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조선시대(1392 1901) 말기의 작품에 나타나는 매우 근대적이고 훨씬 더 현실적인 기법이다. 따라서 이 항아리는 환상과 추상이 혼재된 장식 기법으로 제작된 이런 종류의 도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예 가운데 하나이다.
17세기 한국의 장인들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백자에 회화를 연상시키는 장식을 이처럼 검소하게 처리한다. 실제로 산화철을 이용한 갈색 장식이 줄어드는 등 제작 방식이 개선되지만 순전한 장식을 추구하는 풍조에 밀리게 되며 이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양식의 변화를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