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상적인 철조 작품은 그 위에 금박을 씌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자안을 가진 아발로키테스바라’, 즉 천수관음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양 특유의 반가부좌로 앉아 43개의 손이 각기 다른 지물을 들고 있는 조상은 머리 위로 작은 아미타불을 받든 채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천수관음보살은 그 보다 훨씬 이전인 가야시대(1 7세기)에 이미 알려진 모형으로부터 전승된 백합 문양으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다.

이마가 조금 좁으며 넓다란 얼굴이 10 11세기의 기술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석조상 위에 놓여 있다.

천수관음보살의 이같은 도상은 돈황석굴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회화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중국 당조(618 907)의 기풍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조상은 바로 모든 이들이 환생을 꿈꾸는 극락에서 ’무량광불’, ’무량수불’을 대리하는 보디사트바(보살)이다.

몽고의 위협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크게 인기를 누렸던 부처의 대리인격이었던 얼굴이다.

목조 좌대 위의 서사 기록으로 보아 이 철조 좌상은 통일신라 시대(668 935)에 창건되어 고려시대(932 1392)에 크게 번성했던 동방사 경내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이다.

이 도상은 중국에서는 이미 오대시대(907 960)에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에서 이와 같은 형상을 지닌 환조 예술품으로 이만큼 오래된 것으로는 유일한 예이다.
따라서 이 철조 좌상은 힌두교 사상에서 탄생한 밀교가 논리적 도식에 따라 점차 중국의 당나라에서 한국의 고려를 거쳐 헤이안 시대(794 1185)의 일본에까지 전파 발전되었음을 환기시켜 준다.